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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2_1. title: 어차피 보지 않을 사람의 삶도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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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 때 한창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많은 기사들이 나돌았다. 프로필사진을 비판하는 기사들이었던 것 같다. 기자들은 셀카 문화가 외모 컴플렉스를 심화시킨다는 제목을 뽑아냈다. 나를 담은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을 기피하고 온라인과 ‘클랜’ 문화를 즐겼던 것은 그때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의 생김새가 누군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거나, 누군가의 생김새가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 탐탁찮았다. 무엇이든 항상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고1:지금의 견해). 모든 사람들이 다 생김새와 상관없이 평등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과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을 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아 걔 정말 싫어, 내 스타일 아니야’ 라는 말을 한다. 어른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사람에게 특히 더 높은 관심과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자신과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 나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반대로 나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존재가 되거나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안다. 솔직히 나도 동물이라 누군가가 더 좋다고 느껴지고 누군가가 더 괘씸하거나 싫고 죽도록 밉게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가 ‘싫다’ 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분명히 이것은 인간의 본능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간과 동물은 본능적으로 더 아름답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상대와 가까이 하고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동물의 본능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2500년 전, 혼란스러운 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백가제자 묵자는 모든 사람에게 동량의 절대적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이유가 있으리라.
인간은 더 행복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약속을 했다. 개중에는 동물로서의 본능을 잠시 잊자는 약속들도 있었다. 아무리 글래머러스하고 육감을 자극하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가 추행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나는 ‘겸애’ 도 동물의 본능을 거부하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이지만 이 정도의 가치로 올려놓고 살아보고 싶다.
어차피 안 볼 사람인데 뭐
이 말은 개인적으로 가장 미워하는 말이다. 내가 겸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인간관계가 먼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사랑을 베풀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나와 오래 존속될 관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싶다. 의식적으로 평등한 사랑을 베풀고, 새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동일하게 열어 두는 방식으로 현실적으로 겸애하고 싶다. 나는 이것이 잘 되지 않을지라도, 실제로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임에도 인간이기에 이 원칙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opposite
1.
참고
1.
2020년에 겸손과 퍼스널브랜딩은 완전히 별개라고 생각한다. 못생긴 사람들도 개인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브랜드’ 를 만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는 않아도 좋아하고 소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