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조금씩 가지고 놀았던 클라리넷을 떠나, 기타를 집어 두세달 배우다 포기했던 이유는 암기할 것이 너무 많겠다는 느낌이 들고서부터였다. 집 앞에 있는 실용음악 학원의 기타수업 진도는 간단한 코드를 잡는 것 정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 무렵부턴 학원에서 오선지를 볼 수 없었다. 아하, 코드라는 것은 악보를 읽는 수고로움을 줄이고 곡의 분위기를 한눈에 파악하는 훌륭한 발명품이구나. 그럼 이 코드들을 잡는 방법에 일정한 패턴과 규칙이 있고, 이것을 이해하면 내가 원하는 곡들을 금방금방 칠 수 있겠다.
하지만 기타 선생님의 수업은 코드에 대응되는 손 모양을 익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니 이 세상에 코드가 한두개도 아니고, 모든 코드를 다 외워야 한다는 말인가? 선생님께 여러 번 질문도 해 보고, 인터넷에 글도 찾아 보았지만 이 생각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고, 이것은 그냥 ‘암기의 악기인가’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학생이 지루해하는 것을 걱정했던 것인지 본인이 편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만 가르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당시 나는 너무 싫었다.
그리고 집어 본 악기가 드럼이었다. 혼자서 완성된 음악을 연주하긴 어렵지만, 밴드 필수악기 아닌가. 악보를 보는 것이 어렵지도 않고, 지판을 외워야 할 필요도 없고, 신나게 두들기는 것이 재밌을 것만 같았다. 예상대로 무언가를 외워야 하는 것들은 없었다. 몸이 익숙해지도록 여러 번 반복하면 되는 인고의 악기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혼자 사용되기 어려운 악기라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클라리넷이나 드럼이나 연주하면서 노래를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미 배우던 악기를 두고 다른 악기에 기웃거린 이유는 피아노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곳이나 기타 하나 들춰업고 떠난 여행에서 대중적인 음악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나서 이제 악기를 떠도는 유목 생활은 그만두고 클라리넷과 드럼 정도에서 만족하자고 체념하고 있었다. 하지만 <탤런트 코드>를 읽고 배운 ‘배우는 방법’을 써먹으면 금방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타 학습이 정체됐던 이유는 잘못된 학습 때문이었고, 스스로 좋은 방법을 찾아 돌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 생활관 동아리실엔 기타, 드럼, 건반이 모두 있어 별도로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준비물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다시 기타와 건반을 두고 고민을 시작했다. 건반의 장점은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오선지에도 익숙해서, 음을 읽고 손을 움직이는 것 정도만 훈련하면 될 터였다. 기타에는 오선지와 달리 여섯 개의 선이 표시된 타브 악보라는 것이 있다. 타브 악보를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냥 오선지를 읽고 치면 되는 피아노나 건반을 배우지 왜 기타를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f1). 하지만 건반이 범접할 수 없는 기타의 장점은 휴대성이었다. 그 점을 십분 살려 친구들과 어디에 놀러 가서든, 아니면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나서든, 술 한잔 하다가 차 트렁크에 박혀 있는 기타를 대충 꺼내 들춰업고 노래를 연주하고 싶었다.
이 기동성과 즉시성을 살리려면 정확한 연주보다 그럴싸한 반주 연주를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래도 폰에 작게 코드를 띄워 놓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악보를 띄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만약 반주가 어려우면 의미가 퇴색된다. 만약 건반을 이용한 반주가 훨씬 쉽다면 건반을 배우고 신촌 거리에 놓여 있는 피아노나 어린이대공원 구석에 박혀 있는 피아노를 찾아 기동성을 퉁치는 편이 낫다. 아무튼 나는 악보를 그대로 읽기 쉬운 악기보다는 코드 진행이 쉬운 악기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악기 연주 과정을 아래와 같이 분해해 보았다.
악보 또는 코드 → 음정파악 → 자리잡기 → 손모양만들기 → 연주하기
건반은 ‘손모양잡기’가 어렵다. 반음과 한음을 내기 위한 물리적 위치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비슷한 계열의 코드라도 손 모양이 계속 달라진다. 한편 기타는 ‘자리잡기’가 어렵다. 도 레 미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일이다. 그래서 다들 타브만 보거나, 코드마다 지법을 외우는 문화센터 수강생(과거의 나 자신)이 된다. 타브를 사용하면 음정파악 및 자리잡기 단계가 쉬워지고, 코드를 외워버리면 음정파악 단계가 아예 삭제돼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건반이 어려워하는 ‘손모양잡기’가 매우 쉬워진다. 그 이유는 물리적 간격이 반음 단위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바레 코드를 배우면, 같은 손 모양이로 평행이동하면서 비슷한 계열의 코드를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ref2).
그래서 나는 건반보다 기타를 배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군대에 있는 동안 기타를 다시 배워 보기로 했다. 정말 빠르게 잘 배워낸다면 <탤런트 코드>에서 배운 방법을 잘 적용한 것 아닐까.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을 보관해 두는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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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단순히 지판 외우는 것도 잘 외우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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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Theory for Guitarists, the Complete Method Book: Volumes 1, 2 & 3 of the Music Theory for Guitarists Series in a Single Edition (Amazon 4.8 (500+ reviews), Goodreads 4.8), Apple books avail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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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의 기술’과 굉장히 비슷한 내용을 가진 영어 버전의 책이다. 애플북스 지원이 되기 때문에 태블릿에 넣어놓고 읽을 수 있겠다. 암만 봐도 해외 종이책은 진짜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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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과거의 어떤 원자적 생각이 이 생각을 만들었는지 연결하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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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도 일반적으로 하드스킬이라고 여겨지지만, 나의 정의에 따르면 이건 거대한 하드스킬과 소프트스킬의 집합체다. 앞의 글은 <탤런트 코드>를 읽고 작성되는데, 기타를 비롯하여 어떠한 스킬을 단련하기 위해 훈련에 임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작성되어 있다.
supplementary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을 뒷받침하는지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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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e
opposite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과 대조되는지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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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이 어떤 생각으로 발전되거나 이어지는지를 작성하는 영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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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 생각에 참고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