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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0_1_1. title: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다 똑같은 맥주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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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맥주가 ‘다 비슷비슷한 것’ 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맥주에 대한 첫인상은 다섯살때였다. 부모님이 가지시는 술자리 옆에서 드시는 생맥주를 깔짝깔짝 나눠 먹어본 것이 나의 맥주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이 맥주란 것이 정말이지 맛이 없었다. 15년이 지나 스무살이 됐을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 <카스> 만 마셨다. 난 맛에 특색이 없는 맥주 소주가 싫어서, 스무살 땡 치는 1월 1일날 주머니에 신분증을 꼭 넣고 칵테일집에 갔다.
우리나라에서 생맥주를 판매하는 여느 가게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킨다면 그 생맥주는 <카스>, <하이트>, <오비>, 혹은 <테라>, <클라우드> 정도, 조금 맥주가 다양하다 싶은 곳은 방문해야 <호가든>, <레드락> 정도가 준비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한국스러운’ 입맛에 길들여져 있을 때, 어느 구석진 탭 하우스(수제 생맥주를 판매하는 곳)에 가서 사장님의 추천으로 8천원이 넘는 생맥주를 시켰을 때 나는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웩! 왜이렇게 맥주가 써! 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IPA(에일맥주의 한 종류) 였으리라 싶다. 그것이 내 에일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다행히 2018년쯤 들어서는 주류 규제들이 느슨해지는 이벤트들이 있었다. 해외 맥주들이 쉽게 한국에 수입돼 들어올 수 있게 된 동시에, 국내 소형 브루어리들이 <강서>, <남산>, <서울> 같은 맥주들을 들고 조금씩 편의점까지 진출하는 일을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편의점 네 캔 만원 세트가 생겨나고, 네 캔이라는 선택지에 정말 다양한 맥주 종류들을 담아볼 수 있게 되었다.
편의점 네 캔 만원은 맥주를 실로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다. <카스>, <테라> 에 비해 <강서>, <퇴근길> 같은 에일맥주는 패키징이 압도적으로 예쁘다. 예쁜 디자인에 그런 맥주를 골라담아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거다. 특히 감성 가득한 <남산> 에 데여본 사람은 꽤 많으리라 싶다. 당시의 나도 <남산> 같이 캔과 병이 예쁜 맥주들이 솔직히 정말 맛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깨주는 데에는 맥주가 꼭 이런맛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도, 약간 더 색다른 맛을 제공하는 맥주들이 도움이 되었다. 첫 주인공은 <스텔라 아르투아> 였다. <스텔라 아르투아> 는 한국 맥주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좋아할 수 있는 무난한 풍미를 가졌는데, 그냥 <테라> 같은 맥주에 약간의 오렌지향미만 은은하게 덧입은 느낌이다. 이런 맥주를 발견한 나는, 조금 더 과감하게 모르는 맥주들을 질러보기 시작했다. <1664 블랑> 을 먹고 좌절하기도 하고, 강력한 에일맥주를 잘못 골랐다가 캔을 아예 통째로 버려 버리기도 하고 했다.
그러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친구의 추천을 통해 알게 된 <에델바이스> 였다. 캔맥을 보면 무슨 푸른색 산만 잔뜩 그려져 있다. 진짜 맛 없을것처럼 생겼다. 그런데 마셔보면 정말 그림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1664 블랑> 처럼 역한 꽃향기가 올라오는것이 아니라, 정말 은은하고 포근한 허브를 입에 한가득 머금은 느낌이었다. <테라> 같은 것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입의 포만감! 정말 그냥 신세계였다. 나는 그래서 <에델바이스> 가 맥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열쇠였던 것 같다.
계속 도전을 하면서 맥주에서 맛을 찾으려고 헤메다 보니 이제는 솔직히 말해서 국산 라거맥주는 그냥 ‘시원하게 먹고 싶을 때’ 선택할 뿐이지, ‘맥주가 먹고 싶을 때’ 의 기준이 되지는 않게 되었다. 눈 가려놓고 <테라><오비> 를 구분하라고 하면 우리나라 국민 열명 중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둘도 안될거다. 다른 맥주들은 정말 다양한 향을 풍기면서 개성을 뿜뿜 하는데, 아무 맛이 안 나지 않는가.
그리고 그렇게 미워하던 에일맥주들이... 이제는 어떤 에일맥주를 먹든 다 맛있게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강서> 도, <퇴근길> 도 맛있게 먹는다. 최근(@5/1/2022)에는 제주맥주 양조장 투어도 하고 있다. 편의점에 가면 캔맥보다 병맥주에 눈이 가고, 희귀한 생맥주 간판만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가고싶어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꼰대처럼 한마디만 하면 어떤 맥주가 맛이 없다는 건 그냥 그 맥주가 익숙하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다. 개성이 강한 친구를 만나면 당황스럽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친구의 개성에 대해 알아볼 기회를 만난 것 아닌가. 비슷한 느낌이다. <카스><테라> 의 맛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그 변화폭은 크지 않다. 마치 국어 선생님을 보다가, 영어 선생님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오늘은 음악가, 내일은 과학자, 모레는 프로그래머를 만난다면, 얼마나 익숙하지 않지만 풍요로운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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