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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대책없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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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1 10:23
last edited
2023/07/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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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쉬움
이과: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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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대책없이 떠나다

서울 → 수원, 52km, 2시간 30분 주행

간다 간다 말만 했던 시간을 모두 빼고, 계획부터 출발까지 딱 12시간정도 준비한 것 같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이런 여행이지만 두 가지 꼴깝(?)을 떨기로 했는데, 첫 번째는 바이크에 깃발을 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날짜가 적힌 스케치북을 챙기는 것이었어. 깃발은 혹시나 누가 이거 보고 나 밥이라도 한끼 사주지 않을까 싶어서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해보기로 한거고, 스케치북은 매일 지역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곳에서 들고 사진을 찍어보자 하는 취지였어. 깃발은 당일 아침 다이소에 가서 부랴부랴 재료를 사왔고 스케치북은 집에 굴러다니는거 남는걸 쓰기로 했어.
너무 급히 준비하다보니, 쿠팡에서 주문한 바이크 고정용 짐배낭이 당일 아침에 도착해 버린거야. 매다는 방법도 몰랐던걸 출발하기 30분 전에 부랴부랴 달았어. 그래서 그런지 바이크를 타고 가다보니까 흔들릴때마다 자꾸 틀어지더라고. 주행중에 뒤에 매달아둔 가방이 떨어지면 그대로 대형사고로 이어질지도 몰라. 중간중간 멈춰서서 흘러내리려고 하는 뒷 배낭을 다시 바로잡고 하느라 신경이 많이 쓰였어. 누가 이거 바이크에 붙이고 여행을 간다고 한다면, 꼭 떠나기 잔에 무거운 물건들을 넣고 동네를 몇바퀴 돌아다니면서 배낭이 흘러내리지는 않나 확인을 해 보라고 권해주고 싶어.
# 깃발사진 : 깃발을 안 팔아서 섬유 리드스틱으로 DIY
# 스케치북 날짜 칠하는영상 ASMR
# 뒷배낭 사진
# 진짜 대충 세운 동선 계획. 누가봐도 엉성하다.
이게 참 서울에서 나갈때까지만 하더라도 차막힌다 짜증난다 외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빌딩보다 나무가 더 많이 보이는 경기도 초입 양재시민의숲쯤 지날 때, 해가 뉘엿뉘엿 지는 걸 보고 든 생각이 ‘아 이거 어쩌지? 이짓을 14일이나(이때는 내가 20일씩이나 떠나있을줄 몰랐어)해야한다고?’ 싶더라고. 바이크를 타는 사람이더라도 서울에서 2시간 내내 바이크를 타는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거든.
꽉 끼는 헬멧은 너무 아프고, 예상했지만 수많은 봄철 벌레들이 날아와서 몸에 부딪쳐 죽어대고, 날씨는 덥고, 배낭에 맨 컴퓨터는 무겁고, 바이크에 거치해둔 짐가방은 흘러내리고, 숙소 예약도 하나 안했고 구체적인 동선계획도 안해뒀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네이버 지도만 이리저리 넘기면서 어디가지 고민을 하다가, 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 수원이라는 도시가 있는 것을 발견했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이라면 특히 더 그렇겠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더라. 그래서 수원에도 고등학교때 친했던 친구가 한둘 자취를 하고 있었어. 항상 말만 하고 멀다는 핑계로 놀러가지 못했던 친구랑 밥이라도 든든히 먹으면 후회없지 않을까 싶어 연락을 하기로 했어. 나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만날수록 친해진다고 생각해. 나 전국일주 가는 길인데, 같이 밥 먹자고 갑작스레 전화했는데 좋다고 오라고 해주니 참 기쁘더라. 학교가 달라지면서 볼 일이 많이 없었는데, 수원에서 이런 기회에 친구를 보게 된다니!
양재에서 꼬박 한시간 더 운전을 하고 수원에 무사히 도착해서 밥 먹으러 가려고 길가에 바이크를 잠깐 세워두었는데, 바이크에 달려있는 아주 비싼 보조배터리를 누가 홀랑 훔쳐가버렸더라고! 첫날부터 손해를 봐서 기분이 찝찝했지만, 이 친구가 고맙게도 자기 자취방에서 자고 가도 좋다고 해서 숙박비인 셈 치기로 마음먹었어. 청하에 육회도 맘편히 먹을 수 있었던 첫날이 됐어.
# 수원에서 먹은 육회
이렇게 그냥 첫날이 지났어. 뭐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 출발이 오후 3시쯤이었기 때문에(누가 여행을 오후 3시에 출발하냐) 뭐 더 할 수 있는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
기나긴 바이크 여행을 떠나본 적 없는데 떠날 계획이 있다면, 이런 부분들을 놓치기 쉬울 것 같아서 꼭 공유하고 싶어.
첫째, 등에 매는 가방은 가볍게 해야 해. 한두시간 지나니까 맥북 하나에 책 하나 들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계속 휴식을 하게 되더라. 백팩 말고, 리어백에 최대한 많은 짐을 담아야 해. 물론, 한 7일차쯤 되니까, 가방끈을 헐겁게 내리고 배낭 하중을 오토바이에 분산하는 그런 이상한 노하우가 생겨서 몸은 많이 편해지긴 했지만.
둘째, 헬멧은 머리에 너무 꽉 끼지 않는 것을 준비해야 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너무 꽉 끼는 것을 샀어. 새로 산 헬멧을 오래 착용해본 경험이 없다면 꼭 n시간동안 헬멧을 쓰고 머리가 아프지는 않은지 확인해보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여행 중에 정말 심한 두통에 시달릴지도 몰라. 알고보니 이건 관자놀이가 눌려서 피가 통하지 않아 생기는 고통이라고 해. 그러니 헬멧을 야심차게 구매했는데 관자놀이가 꽉 눌리는 느낌이라면 위험신호! 바로 교환하러 갈것. 정말 나 이것때문에 몇번이나 멈춰섰는지 모르겠어. 헬멧 껍질 벗기고 내피 벗기고 폼 눌러 모양 만들고 별 짓들을 다했어. 결국에는 헬멧 내부에 붙어있는 쿠션을 제거해서 쓰고 다녔어. 하지만 헬멧의 내피를 벗기는 것은 언제나 좋은 생각이 아니지. 내구성이 낮아지고 쿠션부분이 사라져서 착용감이 떨어지게 된다는 말이니까.
셋째, 안전을 위해 풀페이스 헬멧을 쓰는 건 좋지만, 개방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지하면 좋아. 사실 조심스레 타는 사람이 125cc급을 다룬다면 나는 반모정도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해. 나는 숲속 냄새나 바다냄새같은 걸 맡을 때 정말 행복한데, 풀페이스를 쓰면 챙을 열어도 새로운 공간의 공기를 만끽하기 어렵게 되는 것 같아. 마스크 쓴 느낌이랄까. 단, 4월 이후에 길게 떠날 때 반모를 쓴다면 벌레가 얼굴에 많이 부딪쳐 죽으니, 눈코입에 벌레시체 범벅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마스크와 고글정도는 꼭 챙기자! 자고로 마지막 돌아오는 날에, 날아오는 벌이 헬멧 챙에 부딪쳐 죽었어 (징그러우니까 사진은 안 올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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