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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타트업의 성지 스타시옹 F에서 MBA 사람들과 샴페인을 마시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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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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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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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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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옹 F 간판
스타시옹 F 외관
오늘은 프랑스 스타트업의 성지 ‘스타시옹 F(Station F)’에 방문했다.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날들을 통틀어 최고의 경험을 한 날이 될 줄은 몰랐다. 스타시옹 F의 운영시간이 저녁 8시까지이기 때문에 부랴부랴 사촌누나와 매형이 프랑스에 여행을 왔다가 나에게 넘겨주고 간 너구리 컵라면 하나, 햇반, 후리가케에 참기름을 대충 뿌려먹고 급하게 길을 나섰다. 스타시옹 F는 기숙사에서 자전거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라 프렌치 테크(프랑스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는 스타시옹 F를 업무와 휴식공간 등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모든 생태계를 한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벤처캐피털(VC), 학계, 규제당국이 한 공간에 모여 생활하는 '스타트업 생활권' ... "2019년 기준으로 프랑스 창업 기업 수는 81만개를 넘었고, 이에 따라 8%를 넘었던 높은 실업률도 개선되고 있다"면서 "프랑스는 35세 미만의 청년 창업 비율이 57%에 달하며. ... " 2022년 7월 7일(현지시간)에는 기업용 디지털 플랫폼 슬랙(Slack)이 33번째 후원·입주사로 합류했다. ... 2025년까지 25개의 ‘유니콘 기업’(설립 10년 미만으로 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만들겠다던 프랑스의 목표는 2022년 초에 26번째 유니콘 기업을 배출하면서 빠르게 달성됐다. -매일경제 기사
스타시옹F의 건물 내부 분위기
막상 도착해보니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래된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사용하는 스타시옹 F 건물 속 사무실로 향하는 문에는 현대적인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문을 통과해야 한다
직원의 카드 키를 찍어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 멋진 사무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네이버… 네이버 여기서 뭐하니?
저 멀리 보이는 네이버와 라인 사무실
이렇게 허무하게 그냥 돌아가야 하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안에라도 들어가보면 조금 덜 억울하지 않을까?
벽 안쪽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무심한 듯 문 앞에서 동동거리는 내 옆을 지나쳐 지나갔다. 말을 걸어 말어 하면서 한 20명정도가 지나갔다. 영어는 할 줄 알까? 무슨 말을 해야하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결심이 섰다. 아니 창업에 관심이 있으면서 이런 것 하나쯤 부탁 한번을 못 드린다고..? 저기 한명이 걸어나왔다. 그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완전히 막아설 용기는 없었고, 옆구리 방향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저는 학생이고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주니어 창업가입니다. 혹시 안에 들어갈 수 있게 카드키를 대 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첫 번째 행운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분께서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영어를 못하지도 않으셨다. 아 그런 상황이냐, 그런데 카드키는 빌려줄 수 없고 이쪽 영역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대신 건물 초대장이 있으면 저 반대편 워크스페이스에 들어갈 수 있는데, 원한다면 이메일로 초대장 QR코드를 보내주겠다. 너무 감사하다며 나의 @naver.com 이메일을 전했다. 메일을 보시더니 손가락으로 네이버 사무실을 가리키며 자기가 저기 네이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인지 모바일로 초대장 메일이 잘 전송되지 않았다. 몇 번 시도하시던 그분께서는 포기하시지 않고 자기가 자기 자리에 다시 돌아가서 컴퓨터로 초대장을 보내 주시겠다며 돌아가서는 5분쯤 뒤에 돌아오셨다. 마지막으로 파이팅하라는 말을 전하시고 그분은 홀연히 사라지셨다.
스타시옹 F의 업무공간 분위기
나도 초대장을 들고 당당하게 그분께서 알려주신 개방 워크스페이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드가 나의 길을 막아섰다. 지금 외부 개방 시간이 종료되었다고 하셨다. 나 초대장 있는데, 이걸로 안 되느냐고 물어보니 바로 비켜섰다.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본 내부는 정말 멋진 업무 공간이었다. 사무실, 세미나실, 휴게 공간이 넓고 개방적인 공간 속에 오밀조밀 들어 있었다.
구글 스타트업과 그 아래의 세미나실
잘 정돈되어 있는 휴게 공간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냥 이런 곳에서 나중에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더 절이고 싶었다. 사무실로 둘러싸인 건물 속 광장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무대 계단에 앉았다. 딱히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유튜브를 틀고 여느 때처럼 국제시사와 역사에 관련된 동영상들을 보며 시간을 30분쯤 보냈다. 유튜브를 다시 닫았다.
광장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무대와 계단
이러고 있는 것이 프랑스 스타트업의 성지를 제대로 즐겼다고 할 수 있는걸까?
화장실이라도 눈에 담아가자는 마음에 1층(유럽 기준 0층)을 두어바퀴 돌았다. 그냥 나갈까? 를 고민하던 중 구석에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업무공간들은 주로 2층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라도 보자. 사람들이 업무를 하는 공간으로 향하는 계단의 문을 열었다. 문은 별다른 저항 없이 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두 번째 행운을 2층에서 만날 수 있었다.
2층 공간은 텅텅 비어 있었다.
사실 2층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층이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았다. 2층은 업무 공간이기 때문에 평소에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게 잠겨 있는 것이 더 타당했다. 그런데 왜인지 문이 열려 있었다. 이 공간도 조금 더 즐기고 싶다는 마음에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공간에 나뒹굴고 있는 테이블을 아무거나 골라 앉았다. 그런데 사무실은 생각보다 텅텅 비어 있었고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폰을 꺼내 유튜브를 열었다.
앉아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던 공간
찾아본 주제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세계정세 그리고 역사였다. 최근 계속 걱정하고 있는 대만 중국의 긴장감 문제와 인구소멸 문제에 대해서 또다시 찾아보았다.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공인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의 파격적 행보 이후 소식을 업데이트하고 러시아가 세계에서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영토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들도 찾아보았다.
그렇게 30분이 다시 지났다. 에어팟 너머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해 보니 내가 앉아 있는 자리 바로 뒷쪽 세미나실에서 강의가 하나 있었는데 그 강의의 수강생들이 나와서 대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에어팟을 귀에서 빼고 이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 잘 엿들었다.
이 사람들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내 바로 가까이서 가장 열심히 떠들고 있던 사람은 자기가 2500밀리언(n조원급) 달러를 투자받았다고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몇백밀리언 달러(n천억원급)를 투자받은 시리즈 A로부터 6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순간이었다며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돈의 단위가 유로가 아니라 달러라고?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나는 이 행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저 멀리 강의실 문짝에 행사 타임테이블이 붙어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타임테이블을 가까이 보기 위해 문짝에 다가섰다. MBA 최고경영자과정(EMBA) 기업가 정신 수업이었다.
EMBA라는 단어 위에는 HEC라는 대학교의 로고가 희미하게 적혀있었다. 익숙한 단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 교환학생 오기 전에 프랑스의 대학교와 대비되는 개념의 전문단과대학 그랑제꼴에 대해서 많이 알아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상경대학의 이름이 HEC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아니나다를까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경영대학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경영대학이었다.
HEC Paris는 전세계 4위 EMBA과정이다. https://rankings.ft.com/home/masters-in-business-administration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든 말을 걸어봐야겠다는 마음이 확 들었다. 아니, 그러면서도 누군가 나한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아니다! 나 초대장까지 따낸 사람이다! 여기까지 왔다! 말 섞고 만다! (ㅋㅋㅋ) 이것만 해도 유튜브 보면서 낭비한 시간들 뽕 뽑는거다.
이렇게 진동하는 마음을 가지고 옆에서 우두커니 이야기를 계속 들으려고 의자를 1cm 씩 옮겨 갔다. 아니다, 이건 너무 소극적이라 안되겠다. 벌떡 일어서서 문짝에 붙은 타임테이블과 의자 사이를 쓸데없이 몇번 오갔다. 의자와 타임테이블 사이를 두번쯤 왕복 했을까, 조용히 말을 듣고 있는 사람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치며 나를 살짝 쳐다보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이거 무슨 행사냐, 혹시 이행사 HEC에서 열리는 거냐 뭐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한두마디 물어보았다. 이 사람도 다행히 적대적이지 않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섞게 되었다.
때마침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곳 근처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 한둘이 자리를 옮겼다. 나와 그 대화하던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남아있던 서너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과정 수강생들의 나이는 늦은 30대부터 50대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듯했다. 반갑다,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물어봤다. 의자를 5cm 바짝 당겨앉았다. 드디어 내가 그렇게 걱정하고 걱정하던 전설 속의 ‘엘리베이터 피칭’ 시간이었다. 창업을 교육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너에 대한 임팩트를 잘 남기라고 항상 엘리미터 피칭을 준비하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음… 저는 여기서 교환학생 중이고 한국에서 온 학생입니다. 창업에 관심이 있습니다. (I’m an exchange student in EPITA Paris from South Korea. I’m studying Computer Science and highly interested in entrepreneurship)
글로 써서 그럴듯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버벅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의 자식뻘 되는 사람을 예쁘게 보아 주셨다. 반응이라고 한다면 그렇구나, 창업에 관심이 있다고?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 사람들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명품 틈새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프랑스인은 한명밖에 없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자라 온 그 사람들은 문화 이야기도 했다. 딱히 그렇게 전문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옆에 계신 한 분은 나와 눈을 마주치시고는 만나서 반갑다고 이야기를 건네시며, 여기에는 지금 두세사람정도밖에 없으니 저 방 안에 들어가서 네트워킹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해 주신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지만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 저마다 그룹을 이루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한테 말을 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쓰인 강의실 창가 옆 스낵코너 앞을 서성거렸다. 아까 저녁을 부실하게 먹은터라 배가 고팠다. 저 과자 하나 집어먹고 싶은데… 그 바로 옆에는 관리자같아 보이는, 한편으로는 탐욕스러워 보이는 정장 차림의 통통한 여성분이 현란한 영어 솜씨로 네트워킹을 하고 계셨다. 그 여성분이 계신 집단이 과자를 훔쳐 먹으려는 나의 속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나를 약간씩 힐끔거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강의실 창가의 스낵코너와 강의실 교단 앞을 서성거리다 눈을 잠깐 마주친 분께 바로 인사를 붙였다. 마찬가지로 일원인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등의 질문이 들어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나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주목을 이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화가 아주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렇구나, 여기 그런 사람이 아주 많단다. 네트워킹 마음껏 하렴! 만나서 반갑구나.
악수를 한 그 남성은 밖으로 나가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들 무리를 지어 있기 때문이었다. 한번 더 스낵코너와 강의실 교단을 오락가락하다가 교단 앞에 놓인 쇼파에 한숨을 크게 쉬며 잠시 주저앉았다.
곧이어 나를 힐끔거리던 그룹의 정장 차림의 여성분께서 나에게 뒤뚱뒤뚱 다가오더니 묻는다. ‘혹시 여기 일원이니?’. ‘아니요’. 이어 묻는다. ‘누구 찾는 사람 있어?’. 있을 리가 있나. ‘아니요, 없습니다.’ 그 여성은 곧이어 여기는 일원들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대화였다. ‘그냥 여기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면서 ‘그럼 여기 사람들 많으니까 여기가 좋겠네~’ 라며 밖으로 나를 끄집어냈다. 뻘쭘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상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뭐, 저 여자 말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긴 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의 구석자리에 슥 앉았다. 여섯명 정도가 모여 있는 테이블에서 두세명이 자리를 떴다. 남아 있는 몇몇이 주위를 두리번댔다. 어김없이 나에게 시선이 모였다.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냐는 똑같은 질문이 시작됐다. 아까 내가 세미나실 안으로 들어가도록 용기를 주신 분도 테이블에 걸터앉아 계셨다. 아무튼, 벌써 세 번째였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 보았다.
나는 창업enterprenuership에 관심이 많고 파리에서 컴퓨터공학 공부를 하고 있는 교환학생이다. 나는 두 번의 창업 경험이 있다. 처음 한 번은 정부지원만 받고 끝났다. 두 번째에는 정부지원을 받고 수익을 내기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제 두 달 뒤 한국에 돌아가면 세 번째 도전을 할 것이다.
두 번씩이나 창업을 해 보았냐고 하며, 나는 어릴 때 한 번도 그런 시도를 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지금까지도 창업 경험이 없다시는 분도 계셨고, 이렇게 용기를 주시는 분도 계셨다.
첫 번째에는 지원만 받았지만 두 번째는 수익까지 냈다는 것 아닌가. 어쨌든 비약적인 발전이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익도 내지 못하고 끝내는데 이것이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돌아가면 마찬가지로 비약적인 점프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두세분이 더 와서 어느새 테이블은 가득 찼다. 어떤 분들은 새로 온 분들에게 나를 대신 소개해 주시기도 하셨다. 사람들은 와인을 홀짝이고 있었다. 바텐더와 같은 복장을 하신 분께서는 샴페인(샴페인은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재배된 포도만을 이용하는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하여 양조되는 스파클링 와인을 일컬음)을 들고다니며 사람들이 들고 있는 잔을 자동으로 채워 주셨다. 잔이 모두 차자 다들 건배를 하려다가 잔이 없는 나를 발견하셨다. 앞서 세미나실에 들어갈 용기를 주셨던 분께서는 왜 너 혼자 잔이 없냐며 안에서 잔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신다. 어떤 여성분이 나를 추방했다고 하자 자기가 가져다 주겠다며 세미나실로 들어가시더니 샴페인잔을 하나 가져오신다. 복도를 거닐던 바텐더가 내 잔에 샴페인을 채운다. 샴페인은 미지근했지만 맛은 충분히 훌륭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들 주섬주섬 가방을 쌌다. 행사를 마치고 뒷풀이를 하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이랑 다를 것이 없었다. 혹시 뒷풀이 가시냐, 잠깐 있다가 갈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새 그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여성분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행사장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내가 적응하는데 조금이라도 먼저 말을 걸어주신 분들을 찾아가서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링크드인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내가 나중에 성공하면 감사를 표현하고 싶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다들 오 아니라고, 너무 반갑다며 응원한다며 연락하라며 인사를 받아 주셨다. 대충 아래와 같이 말했던 것 같다. 이 말을 하기 위해 구석에서 영어로 ‘감사’가 뭐였는지 주섬주섬 찾아봤다.
Thank you very much for helping me today. I want to express gratitude when I become a successful entrepreneur.
그렇게 사람들 세네분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떠나는데 한 분이 불쑥 그런 나를 쳐다보더니 한국어로 ‘반가워요~’ 이런다. 엥? 분명히 외국인이었다. 프랑스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에 이럴 때마다 인지부조화가 오곤 한다.
오…? 헬로, 봉수…아 안녕하세요!
이분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한국인 삘이 나서 이렇게 인사를 해 보았다고 한다. 어떻게 한국어를 알고 계시느냐고 물었다. 자기 와이프가 한국인이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냐고 하는 질문을 받았다. 네 번째 엘리베이터 피칭이었다. 약간 더 정리된 상태였다. 조금씩 정리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다. 프랑스 사람답게 내가 교환학생 중인 EPITA도 알고 계셨다. 어떻게 한국 여자친구를 처음 만날 수 있었냐고 물어보니,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Tinder’(세계적으로 가장 활성화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이런 것에 개방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아무튼, 내 PR을 듣고 마찬가지로 ‘오! 여기 잘 찾아왔다’ 는 반응을 보여 주셨다. 행사장을 나가며 샴페인잔을 들 수 없었기 때문인지 ‘너는 왜 맥주가 없냐! 하나 받아라!’ 라고 맥주를 건네셨다. 맥주병을 받아들고 함께 행사장에서 빠져나왔다.
건네주신 맥주 ‘라 불독’
이 프랑스 사람은 자신을 투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 이 투자사 직원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센 강의 강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또다른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투자사에서 일하시는 분이 ‘이 친구는 평생 벌 돈 다 벌었다’고 놀리시고, 기업가라고 불리는 사람은 허허, 아니라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니. 센 강변으로 향하는 길에 그 성공한 기업가라고 조롱(?)당한 사람과도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 이 EMBA 과정을 왜 듣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뭐 이론적인 것들을 배운다고 했다. 당신은 이미 성공한 기업가인데, 이런 수업이 필요하냐 되물었다. 실제로는 사실 크게 소용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론같은건 유용하곤 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럼 혹시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오신 것이냐 물으니 두분 다 맞장구를 치면서 그게 더 맞는 말 같다고 동의하셨다.
투자사에서 오신 분께는 센 강으로 향하는 길에 계속 나에게 이런 저를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을 지나고 있었다. 물론 오른손에는 맥주병을 계속 틀고 계셨다. 오늘이 첫 수업이었는데, 오늘 수업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수업에서는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투자사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캐시 플로우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셨다.
종합대학이라면 ‘기업회계’(Cooperate Finance) 를 복수전공하거나 관련 수업들을 수강라고 하실 정도로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이것이 비즈니스의 실제 측면이라고 하셨다. 투자자에게 말할 때는 ‘회계’ 의 언어로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예를 들면 어떤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엑셀파일을 열고, 캐시플로우, 이익과 손해 등을 연차나 분기별로 정리해 두고 현재는 이렇고 미래에는 이럴 것이므로, 너희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비즈니스 회계를 공부해야 한다며, 그리고 회계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잡지, VC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아티클을 보며 팔로우업할 것을 강조하셨다.
HEC EMBA 그룹의 뒷풀이 장소는 센 강변에 있는 펍이었다.
어느새 뒷풀이장 앞에 도착해 있었다. 노을과 센 강을 배경삼아 놓인 야외 펍 앞에 멈춰서서 이야기를 나눈지 10분정도가 흘렀다. 이 분께서도 어서 다른 분들이 뒷풀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시기 전에 네트워킹을 하러 가셔야 할 시간이었다. 때마침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라며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말씀해주신 이야기덕분에 용기가 난다고 말을 하고 싶은데 용기가 영어로 뭐였을까, 영어로 용기가 뭐였을까.
… I’m getting aggressive! (ㅋㅋㅋ)
역시 찰떡같이 알아듣고 ‘맞다, 맞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나오는거 너무 좋다!’ 며 웃음을 지어 주셨다. 가볍게 악수를 한 다음 헤어졌다.
센강변 보고 멍 때리기
여운이 가시지 않아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도 센 강변에 잠깐 앉아 멍을 때렸다. 자신이 어릴 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는 항상 내가 외국인을 잘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못한다고 나 자신을 정의하는 등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영어 문제에 신경쓰지 않았다. 스타시옹 F의 사무실 게이트 앞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운 나쁘게 탐욕스런 여성같은 사람이었어도 기가 죽어도 운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두들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기를 쓰기 위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있던 차에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배터리는 10% 남짓 남았다. 약간 취한 듯했는데,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도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스타시옹 F와 센강변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 도서관
EU 깃발과 프랑스 깃발
정신을 차려보니 배가 조여오듯 허기짐이 몰려왔다. 기숙사까지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했었기에 센 강변에서 자전거 스테이션이 있는 스타시옹 F 근처로 돌아왔다. 시간은 오후 9시가 넘었지만 이제 막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밤에 보는 스타시옹 F 건물은 더 멋잇었다.
스타시옹 F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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