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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7.6_1. title: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오늘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의 범위 내에서 다양한 소스로부터의 쾌락을 지속적으로 느껴야 한다.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면 장기적으로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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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7.6. title: 행복이 선이라는 테제(‣) 위에 쌓아올린 행복 연구들이 오해를 만들었다. 진화, 뇌과학은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면 행복, 긍정적 정서(‣), 쾌락이라는 보상을 얻는다고 해석한다. 생존이란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일이다.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면 행복이라는 도구는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생존한 사람들의 후예이다. 칼로 찌르고 베는 생존의 위협이 상당히 사라진 21세기에도 우리는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3__1.2.2. title: 가치는 환경(시간)에 의해 변한다.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 따라서 가치라는 것은 현재의 나에 의해서 결정되며, 모두에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노스보다는 일론 머스크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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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7.6_1.1. title: 뇌과학은 남성이 돈과 명예를 얻는 경우 여성을 만날 기회가 더 많은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여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쾌락의 임계값이 존재한다. 따라서 돈과 명예를 추구하면 행복과 성취라는 보상이 특정 수준까지만 주어진다.
ba7.6_1.5. title: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척을 하면서, 은근슬쩍 성적 소구 등 1차적인 본능을 이용하는 것도 전략이다. 이들 시장은 언제나 극단적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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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것이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버튼을 누르는 일이라면, 그 버튼을 누르는 방법은 굉장히 원시적일 것이다. 이 원시적인 행동에는 성폭행이나 도둑질처럼 반사회적인 행동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원시적인 본능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원시적인 본능대로 행동하지 않는가? 나는 이것이 개인의 강력한 의지 혹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인간의 도덕적 특징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와 법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참고4:뒤르켐의 아노미 이론).
우리가 흔히 인간다움 때문에 어떠하다고 믿는 것들(인간성)이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섬 에란겔이나 드라마 <워킹데드>의 디스토피아처럼, 우리의 도덕적 행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라는 인자가 제거된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이런 사회의 존재가 왜 좋은가? 성폭행이나 도둑질이 나쁘다고 규정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고, 그 근거란 무엇인가? 이러한 대부분의 의문들이 사회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오늘날 사회문화적으로 건전한 토의를 나누기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들이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하지만(의문 참조), 사실 나는 현실 세계 속에서 나의 행복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고민하던 중 <행복의 기원> 이라는 책을 접하게 된 것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반사회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회의 기대에 역행한다면 아무리 그 생각이 불멸의 진리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행복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사회의 거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이 된다면 큰 보상을 받고 행복감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으로 공급이 적지만 수요가 많은 스킬을 가진 사람의 몸값이 대체적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from3). 책 <행복의 기원> 에서도 우리가 사회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에 진화적인 요소가 분명히 개입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면 장기적으로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from2).
그래서, 고민하는 일을 분리할 것이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생각들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첫 번째, 사람이 사회적으로 살아갈 때 행복한 이유가 두 번째이다. 이 글에서는 사람이 왜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는지(사람이 사회적으로 살아갈 때 행복한 이유), 즉 두 번째에 대해서 살펴보고 나아가 21세기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행복할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글을 작성하는 당시에는 첫 번째 고민보다 두 번째 고민의 우선순위가 더 높은데,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내가 <행복의 기원> 이라는 책을 읽은 이유가 두 번째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사회적으로 살아갈 때 더욱 행복한가? 먼저, 사람이 왜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는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이 타인을 위해 어느정도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 근시안적인 쾌락이 아니라 조금 더 미래의 거대한 쾌락을 취하려는 미래지향적 태도, 창의력 등도 어찌보면 인간의 생존과 연관이 있었다(참고1,2). 따라서 타인을 돕고, 창의적 사고를 하고, 눈앞의 쾌락을 포기하고 장기적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다(sup4).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은 클럽에 가서 하룻밤을 함께할 이성을 찾는 근시안적인 쾌락만 추구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즉, 근시안적 쾌락만 추구할 줄 아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장기적으로 자연선택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우리는 그런 유전자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며 쾌락을 얻어내는 것이 좋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는 생존한 사람들의 후예이다. 칼로 찌르고 베는 생존의 위협이 상당히 사라진 21세기에도 우리는 그 유전자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from1). 그래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일과 가까워지면 쾌락으로 ‘보상’ 을 받는다. 이런 쾌락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동시에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대충 생각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상상이 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면 인기가 많아지므로 생존에 가까워지므로 행복할 것이다). 오늘날 타인을 돕는 일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사회는 매일매일 클럽에 가고 잘 노는 사람들보다 자기개발을 명목으로 공부를 하고 더 나은 암컷과 수컷이 되는 일이 조금 더 낫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쾌락을 추구하되 이왕 추구할 쾌락이라면 사회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쾌락을 추구하면 더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다(from2).
명상을 하고 미라클 모닝같은 일을 피상적으로 수행해 내며 뽕에 찬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from4)이 행복에 가까워지도록 촉진시킬 수는 있겠지만 행복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오늘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가치의 범위 내에서 다양한 소스로부터의 쾌락을 지속적으로 느끼자. 그래야 장기적으로 나라는 동물의 생존가능성이 높아진다.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들.
from : 과거의 어떤 생각이 이 생각을 만들었는가?
3.
supplementary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을 뒷받침하는가?
2.
3.
4.
opposite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과 대조되는가?
1.
None
to :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이 어떤 생각으로 발전되고 이어지는가?
1.
2.
참고 : 레퍼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