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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토막이야기 2: 에피소드

created
2023/05/17 00:47
last edited
2024/03/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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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쉬움
이과: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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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에펠탑 피크닉 하려고 프랑스 가는거죠?

인도 식당에서 양파 주문

니스에서 인도 식당을 찾았다.
난(납작한 빵) 두개에 파닐(인도에서 우유로 만드는 발효 비건식품. 식감은 두부와 치즈 사이 어딘가) 또는 치킨이 들어간 버터카레 한개를 시키면 딱 맞는다. 인도친구에게 배운대로 손으로 쿰척쿰척 먹어야지.
마찬가지로 인도 친구에게 배운대로 양파를 주문했다.
접시를 치우러 오셔서는 인도사람 아닌 사람들 중에 양파 주문한사람이 너가 처음이라고. 양파 썰어달라고 주방에 요청했더니 주방에서 나왔던 반응을 이야기해 주셨다.
“?? 양파?? 그사람 인도사람이니? (웨이터: No) 아니 그럼 그사람 파키스탄 사람이니? (웨이터: No)”
그러더니 썰을 하나 풀어주셨다. 어느날 그냥 어떤 사람이 와서 주머니에서 몰래 꿀을 꺼내서 빵에 뿌려 먹었다고. 그걸 목격한 웨이터는 이거 주방에 많은데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 이걸 왜 몰래 뿌려먹냐고  한소리를 했다는.
어느 날, 운 좋게 니스 동네의 어느 식료품점에서 그 사람을 만난 웨이터는 “Hey honey guy” 라고 인사를 건넸다고. 여튼 인도음식 먹는 법 네이티브에게 잘 배웠다.
-프랑스 남부 니스의 인도 식당에서

나이트클럽 컴퓨터실

구글 지도, EPITA 건물 속 의문의 나이트클럽
구글 지도에 EPITA 친구들이 또 Cisco를 ‘나이트클럽’으로 만들어 두는 만행을 저질렀다. 실상은 컴퓨터실이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게 클럽 음악을 틀어놓고 프로그래밍을 하는 방인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징하여 사용하라고 허가한 방이라고 한다.
실상
-학교 컴퓨터실에서

택스 리펀 안됩니다

돌아오기 D-3, 막판 스퍼트 및 쇼핑
교환학생은 6개월 미만으로 머물렀어도 택스리펀 안 되니 시도하지 말자. 정확히 말하면, 학생 비자로 입국한 사람들은 택스 리펀이 안된다. 나도 5개월 27일인가 머물렀고, 비자는 딱 6개월 나왔는데 리펀 거부당했다. 알아보니 학생 비자는 안 된다고 했다. 친구들이 돌아가기 전에 택스리펀 받을 쇼핑을 해야 한다고 해서 2~3일을 쇼핑에 매진했지만 가성비가 딱히 좋지는 않았던 셈이다.
-마레지구와 공항에서

학교 파티에서의 단상

쫄쫄이를 빡 빼입고 젖꼭지가 훤히 다 비치는 나시를 입은 화장한 남자 세 명이 나, 인도, 중국, 모로코, 캐나다 출신의 친구들이 주르륵 앉아있는 벤치앞에 뚜벅뚜벅 걸어왔다. 다들 경직된 것으로 보아 나를 포함해 바짝 긴장한 분위기였다. 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건가 했더니 그냥 라이터를 빌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지금 나와 함께 앉아있는 이 중국, 인도 친구와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문득 한달 전쯤 생각이 났다. 배를 타고 파리를 투어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는 어떤 중국인이 함께 배에 타고 있었다. 동양인에게 친숙함을 먼저 느꼈기 때문인지 나에게 오셔서 말을 걸었다. 대화를 하고 보니 이분은 AI와 화학을 전공해서 머신러닝을 이용한 화학을 미국의 대학원에서 연구하고 계시는 분이셨다.
나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던 이 분은 내가 소개해 준 학교 교환학생 터키 친구들이랑 금방 친해졌다. 그는 90%의 시간을 터키친구들과 나누는 데 사용했다. 배에서 내리며 터키 친구들의 이름을 한번씩 더 물었다.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전공하신 분이고,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때에는 꽤 훌륭한 결과물을 내고 계신 분이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상대는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터키 친구들과 그 중국 연구자를 묶어준 것은 공통된 가벼운 경험이었다.
물론 내 영어실력 미숙이라는 문제도 있었지만, 온전히 이것은 영어를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 대신, 위와 같이 당시의 문제를 정의내리게 된 것은 최근의 경험과 오늘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브라질 친구의 기숙사에 놀러갔을 때가 있었다. 거기에 있었던 친구들 중 하나는 마약 성분에 반쯤 취해 있었음에도 컴퓨터에 완전 심취해 있는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동아시아라는 문화권과 한국의 문화에 관심가지는 친구들뿐 아니라 중국 친구와 나 사이에는: 과거에 잠깐 공부했었던 중국어와 한국에서 많이 도전해 먹어 보았던 중국 음식들이라는 매개체가 있었고, 인도 친구와 나 사이에는: 내 룸메이트가 인도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먹으러 갔던 음식들과 음식을 먹는 방법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던 지식 등이 종합적으로 이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고, 여행을 다니라는 이유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이 교환학생이 끝나고, 프랑스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구석구석 방문하려고 노력한 나는 프랑스 사람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학교 파티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퀄리티

많은 친구들이 프랑스에 방문하면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루브르 박물관을 그냥 슥 둘러보고 그 규모에 압도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여기를 다녀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뽕이 차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조금만 더 디테일을 신경써 보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우선 루브르 오디오 가이드는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자. 프랑스는 오디오 가이드에 진심인 나라이다. 파리의 또다른 명소 오페라 가르니에는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파리의 또다른 유명한 미술관 오르세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세계 으뜸 박물관인 루브르는 닌탠도 3DS를 오디오가이드 디바이스로 사용한다. 디바이스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고, 컨텐츠가 너무 좋다.
루브르 박물관의 오디오가이드
나처럼 미알못이라 작품을 보더라도 도대체 이게 왜 멋지다는 것인지 스스로 이해하거나 공감할 내공은 없고, 그래도 나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유명한 것들을 위주로 보고 싶으면서도, 너무 겉핥기는 싫고, 루브르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제공되는 명작 투어 컨텐츠가 그중 으뜸이었다.
닌탠도 3DS는 내 위치를 자동으로 파악하여 박물관 내 나의 위치를 기반으로 길안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적절한 가이드를 자동재생한다. (한편, 기술적으로 박물관 내에서 내 위치를 어떻게 추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GPS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와이파이 혹은 블루투스 기반의 삼각측량을 사용하는 것일까…) 작품을 설명하는 속도는 빠르지도 현학적이지 않았다.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을 설명할 뿐 아니라, 작품에 걸맞는 적절한 BGM을 재생해 주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를 배가했다.
전시장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절대 아무거나 아무 위치에나 맥락 없이 전시하지 않는다. 모든 박물관이 다 그렇겠지만 루브르는 박물관 측의 노력이 훨씬 잘 부각되는 편이다. 각 방마다 ‘무슨무슨 방’ 이라는 네이밍이 붙어 있었고, 각 방의 인테리어는 작품들과 조화를 이룬다.
멋진 대리석 기둥의 조각이 부각되는 방
예를 들어 신전 기둥이 부각되는 방에는 그리스-로마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고,
이집트 컨셉의 전시관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받고 도착한 방에는 흙 색의 대리석으로 인테리어되어 사막 느낌이 물씬 나는 전시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이 전시관에는 이집트 유물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기다란 복도에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관찰할 때 더욱 흥미로운 회화작품들이 시간 순서대로 걸려 있었다. T 자형으로 생긴 전시공간에서는 좌 - 우에 각각 낭만주의 - 신고전주의를 배치하여 둘 사이가 대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프랑스의 합석 식당

프랑스 파리에는 아주 희한한 식당이 하나 있다. 굉장히 오래 전부터 있었던 식당인데, 옛날 그 문화를 그대로 품고 있다.
우선 메뉴가 딱히 특별하지는 않다. 푸아그라, 염소 머리고기, 뵈프 부르기뇽, 에스카르고 등 전형적인 프랑스 요리를 판매한다. 엔트리, 플라, 디저트를 합친 세트메뉴의 가격은 15유로정도였다. 이정도면 파리에서 엄청 저렴한 축에 속한다.
이 식당은 과거에 파리 사람들이 정말 빠르게, 저렴하게 밥을 휘갈겨 먹고 나가는 식당이었다고 한다. 가격 정책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진짜 관전 포인트는 전반적으로 밥을 여유롭고 고상하게 먹는 이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이 식당이 가진 전통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우선 가게에 들어가면 그냥 말 그대로 ‘빈 자리’ 에 앉힌다. 한국으로 치면 합석이다. 한국 합석과 다른 점이라면 남자 일행 옆에 남자가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 테이블은 2개 혹은 3개가 붙어 있으므로 4명 혹은 6명이 붙어서 밥을 먹게 된다. 테이블을 가득 채우지 못하면 그냥 다른 손님으로 채워버린다. 나는 40대 어른과 함께 식당을 찾았는데, 2개의 테이블이 붙어 있는 곳에 배정받았다. 처음 옆자리 손님은 국적 미상의 유럽 20대 여성분 두 분이었다. 깨나 예쁘게 입고 계셨는데, 나와 내 동행을 보는 그 설명하기 어려운 눈빛이 참 재미있었다. 인삿말만 나누고 각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분들이 떠나가시고 번듯하게 차려입은 파리지앵 30대 커플이 옆자리를 채웠다. 서로 옆자리에 하등 관심이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합석이 오늘날 컨텐츠가 되고야 말았다. 가게에는 7시부터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7~8시에 밥을 먹기 시작하는 프랑스 식당에서는 보기 힘든 이례적인 광경이다. 예약 따위는 없다.
서빙은 진짜 대충 한다. 메뉴를 적어가는 고상한 메모지 이런 것 없다. 손님이 올 때마다 테이블을 닦는 대신 테이블보다 훨씬 큰 하얀 종이를 새로 까는데, 거기에 주문한 메뉴를 볼펜으로 휘갈긴다. 나중에 계산할 때도 계산기따위 쓰지 않는다. 테이블에서 우리가 옛날에 학습지 했던 것처럼 덧셈 계산을 한다. 서버가 계산을 잘못해서 몇 유로 더 비싸게 계산했다가 취소하는 불상사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차가운 디저트는 무심하게도 갓 식기세척기에서 끄집어져 나온 뜨끈뜨끈한 접시 위에 올려 서빙된다. 지금까지 프랑스 6개월 살면서 이런 것은 본 적이 없다.
가장 우스웠던 짜침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와인 글라스를 사용하지 않자 서버가 와인 글라스를 슥 가져갔다. 우리 바로 옆 합석 자리에는 와인 글라스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서버는 와인 글라스를 들고 4미터정도 떨어진 옆자리로 가서 이것저것 하는 척을 2초정도 하더니 옆자리에 손에 들고 있던 와인 글라스를 툭 놓는다. 일반적으로 옆 테이블에 올라갔던건 아무리 안썼다고 하더라도 다른 테이블을 주지는 않는데, 바로 주는 것을 숨기려고 저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굉장히 우스웠다.
-프랑스 파리의 식당에서

독일의 학생맥주와 영국 놀리기

술이 적당히 오른 독일 친구들이 편의점 같은 곳에 가서 맥주 한 병을 사들고 공원에 가서 마시려고 하는 것 같았다. 독일에 우리나라와 같은 프렌차이즈 형태의 편의점이 즐비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일 길거리에서는 ‘맥주 편의점’ 같은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가 마트보다 더 싸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하는 점으로 보아 확실히 편의점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맥주들을 위주로 팔아서 내가 그냥 ‘맥주 편의점’ 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독일 친구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독일에서 ‘학생 맥주’라고 불리는 맥주가 있다며 너도 한번 도전해 보겠냐고 묻는다. 이 술이 독일 그 학생들에게 유명한 ‘쌉가성비 학생 술’이라며 맥주병을 건넸다. 당연히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맥주를 받아들었다. 유럽에서는 초면의 친구에게 뭔가를 사준다는 일이 흔히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자기가 이 맥주들을 사겠다며 신나게 나섰다.
500ml 정도가 돼 보이는 맥주병은 1유로(1400원)가 채 하지 않았다. 병을 따서 맛을 보니 그렇게 나쁘다고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맥주로 쳤을 때 이 맥주가 ‘필라이트’와 같은 입지의 술이라면, 과연 독일인들은 이것을 맛없다고 느낄까 궁금했다. 너는 이 맥주의 맛이 좋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아니다, 이건 그냥 가격 대비 앵간한 술이다. 좋은 술들은 따로 많이 있다.’ 고 하며, 돈 많은 친구들은 아마도 이런 ‘학생 술’ 따위는 먹지 않고 와인을 먹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영국식 영어 발음으로) ‘오우, 그렇게 비싸게 자라 왕자님같이 사는 그들은 비어퐁같이 천한 것은 하지 않아. 우아하게 글라스에 와인을 따라두고 홀짝거릴 뿐이지.’ 그들은 비어퐁이 아니라 와인퐁을 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거들었다.
-베를린의 편의점에서

독일 벨튀

여덟 명의 친구들 중에서 독일 친구 한 명이 갑자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무리를 이탈한다. 독일 친구 셋과 우크라이나 친구 한 명의 뒤를 따라가던 네명의 교환학생 친구들이 모두 어리둥절해한다. 갑자기 저 친구가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까 또 다른 독일 친구들 중 한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제는 너무 익숙하다는 듯이 ‘사람을 괴롭히러 가는 것’이라고 한다. 아니 사람을 괴롭히러 간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를 이탈했던 친구가 뛰어 돌아온다. 나는 무슨 노숙인이라도 괴롭히러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독일 친구들 셋 중 어떤 여자 친구가 현재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살고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간 것이었다. 쉽게 말해 벨튀였다. 밤 열두시쯤 된 시간이니, 잘 준비를 마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약이 오르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황을 들어보니 집주인이 세입자들은 물론이고 특히 그 독일 여자 친구에게 상당히 못되게 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밤에 그 거리를 지날 때 종종 그 집의 초인종을 마구 누르고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럼 집주인의 주소는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던 것인가. 집주인은 그 독일 여자의 전 남자친구였다고 한다.
-베를린의 저녁

에어드랍

자정 너머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플릿메이트 친구가 이런 문자를 에어드롭으로 보내왔다.
처음 받은 에어드랍
시간이 늦었으니 공부 그만하고 자라는 내용을 메모장에 적어서 캡쳐한 뒤 에어드랍으로 보낸 것이었다.
난데없이 따뜻한 문자를 받고 똑같이 에어드랍을 이용해서 친구의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어 주었다.
움짤로다가 잘 골랐다.
3분쯤 시간이 지났다. 다시 과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에어드랍 알림을 보고 깜짝 놀랬다.
내 사진을 받고 사라진 3분동안 계속 무서운 사진 찾아다닌듯
막상 당해보니까 진짜 무섭다.
-기숙사에서

롱패딩 이야기

이번 여행에서 정말 잘 챙겨갔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는 롱패딩이다. 유럽 사람들이 롱패딩을 잘 입지 않아서 내가 패션 고자같이 보이면 어떡하나 뭐 그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이지 내가 승자였다. 매서운 겨울철, 파리 시내 식당과 펍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내가 5년째 입고 있는 시퍼런 데상트 롱패딩이 정말 멋있고 따뜻해 보인다고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고, 한번은 어디서 그런 옷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를 조롱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패딩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파리지앵들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교환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는 터키 친구들이 특히 내 옷을 부러워했다. 이 친구들은 고맙게도 편해 보이고 어벙한 옷(통 큰 바지, 루즈핏 맨투맨… 전형적인 K-아메카지 패션)에 대충 패딩을 두르고 있는 내 패션에 대해서 칭찬하곤 했는데, 함께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나온 이번에는 특히 내 패딩의 보온성에 대해서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에서 자신들이 사는 지역은 연간 최저 기온이 5도에서 10도 사이로 한국 한겨울에 최저 기온보다 훨씬 높을뿐더러 최고기온은 한국을 훨씬 웃돌기 때문에 한국처럼 두꺼운 옷들보단 여름 옷들이 발달했던 것이다. 이 친구들이 터키에서 가져온 옷들은 아무리 싸내도 파리와 베를린의 추위를 배겨내기 어려웠던 것 같다.
5년째 입고 있는 옷이긴 하지만 이 패딩에는 많은 추억들이 서려 있다. 이 옷을 입고 수능을 보러 가기도 했고, 이 옷을 입고 한겨울철 새내기 캠프와 엠티를 줄곧 가곤 했는데, 이 옷 덕분에 술을 깨기 위해 대성리 정자에 어영부영 드러누워 있을 수 있었다(선배들에게 데상트 패딩으로 불렸다는 후문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옷의 보온성과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재수생활이 끝나고 눈이 잔뜩 온 다음날 모든 것이 얼어붙은 영하 20도 새벽 네 시, 경기도 마석의 한 야산에 유성우를 보겠다고 다짜고짜 올라간 것이다.
한국 겨울은 정말 맵다는 얘기부터 눈이 소복이 쌓인 한국의 야산에서 이 패딩을 입고 누워 두 시간은 거뜬히 버텨냈다는 그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하다가, 혹시 별똥별을 본 적 있냐고 물어보았다. 놀랍게도 이 친구들은 모두 별똥별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서울 경기권에 사는 2천만 명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별똥별을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고 살아가는데 말이다.
아무튼 터키 친구들이 나에게 그날 소원을 빌었는지 물었다. 그래서 아 너도 봤으니 알지 않냐… 별똥별은 0.5초 안에 사라진다고, 그 시간에 소원을 비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0.5초 안에 영어로 소원을 비는 시늉을 막 하면서… 그랬더니 아니 누가 별동별이 떨어지는 동안 소원을 비냐고, 소원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고 별똥별이 떨어지면 그게 성취되는건데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고 한소리 들었다. 하기야 0.5초 안에 소원을 읊조리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합리적인 편이다.
-독일 베를린 시내의 어느 바에서

디지털 발자취

독일 친구와 나눈 이 이야기는 롤을 언제부터 얼마나 오래 했는지로 시작되었다. 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계산하는 사이트에 따르면 나는 거의 200일정도 했다. 체감상 스타크래프트도 그만치 했으니 나의 인생에서 2년은 게임인 셈이다. 이 친구의 경우에는 30일정도 롤을 했고, 마인크래프트를 조금 더 많이 즐겼다고 했다.
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어릴 때 인터넷 커뮤니티들에 2012년쯤 포스팅한 게임 관련 게시글들과 댓글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너무 쪽팔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다행히 남을 헐뜯거나 욕설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과거에 인터넷에서 사용되던 표현들과 오늘날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표현들이 너무 다르다는 점이 문제라고.
나는 이런 것들을 디지털 흔적(digital traces)이라고 부르고 너무 부끄러워서 여행 오는 도중에도 이들을 지우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자신은 다행히 인터넷에서는 완벽히 익명을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21세기의 어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표했다. 요즘은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구글 아이디를 사용하는 유튜브 댓글에 네다섯살 아동들도 종종 보인다며 이렇게 되는 경우 ‘디지털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작성한 게시글 혹은 댓글을 우리가 삭제하더라도 기업들이 ‘실제로’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저한테 보이지만 않게 만드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입약관과 규정에 따르면 지워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트위터같은 SNS에서 어떤 유저가 1년 전 삭제했던 게시글이 모종의 이유로 어느순간 다시 나타나 있는 등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이렇게 익명과 비익명, 공개와 비공개 논의를 하다 보니 라이센스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오픈소스 라이센스는 생각보다 정말 복잡하고 관리가 까다롭다는 주제의 이야기였다. 내가 오픈소스 라이센스에 대해 아는 바는 GPL계열은 정말 깐깐해서 웬만하면 프로덕트에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 정도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라이센스를 정말 까다롭게 적용해넣지는 않지만 이 관련 내용에 흥미를 가지고 공부를 해 보았다고 한다.
이야기 중에 내가 인상깊게 들었던 이야기는 몇몇 특이한 라이선스들의 존재와 이들간의 충돌 이야기, GPL과 AGPL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스코드의 일부만 사용하더라도 소스코드 전체가 특정 라이선스를 사용해야만 하는 라이선스도 있지만, 일정 단위를 기준으로 해당 부분까지만 공개 혹은 라이선스 명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전체 소스 코드는 라이선스 A인데, 내부 소스 코드 중 일부는 라이선스B라고 해보자. 라이선스들 사이의 의존관계는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이것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GPL 라이선스의 코드를 사용해서 백엔드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클라이언트에게 나의 소스코드를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이유는 사용자가 직접 백엔드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프론트엔드라는 가림판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AGPL 라이센스를 가진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면 프론트엔드가 API를 호출하는 경우 소스코드가 AGPL라이센스를 동일하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프론트엔드도 AGPL라이센스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유저에게 소스코드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시간이 충분히 지난 이후 오픈소스 라이센스를 이용해 트집을 잡는 경우에 대비한 내용이 작성되어 있는 라이센스도 있다고 한다. 커다란 소프트웨어팀에는 확실히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전문 법무사가 필요하겠다.
-프랑스 리옹의 어느 식당에서

니스 해변 노가리 주제

니스 해변에 꽂아둔 와인병
한국 친구들, 독일 친구 하나와 함께 프로방스, 마르세유, 니스 등 프랑스 남부 투어를 다녀왔다. 맑고 화창한 지중해성 기후로 유명한 니스였지만 정말 운이 없게도 니스에 체류하는 3일 중 낮시간에 비가 내리지 않은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딱 전날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었을 정도였는데.
맑은 낮시간이 없었기에 비가 오지 않는 밤시간만이라도 니스 해변을 즐겨야 했다. 숙소에서 와인과 와인 잔들을 챙겨 해변으로 줄곧 나왔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갓 꺼낸 와인을 먹는 것이 아니라면 항상 온도가 문제다. 와인 맛에 가장 중요한 변인은 온도다. 어떤 와인이든 실온보다는 시원한 온도로 제공되어야 한다.
나와 독일 친구는 와인을 차갑게 만들기 위해 병을 바닷물로 식히고자 이런저런 삽질을 했다. 파도가 계속 들어치며 니스 해변 특유의 자갈들을 마구 헤짚어 버려 와인병이 떠내려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깊은 곳에 병을 심는 것은 위험했다. 그렇다고 너무 파도가 닿지 않는 먼 곳에 병을 심으면 냉장고로써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나와 독일 친구는 마른 자갈과 파도에 닿는 자갈의 경계 쯤에 와인을 낑낑대며 심어놓고 주저앉아 와인이 시원해지기를 기다렸다. 다른 친구들은 파도가 닿는 이곳에서 네다섯 보폭정도 떨어진 곳에 둥글게 앉아 있었다.
어느 바다든 그렇듯이, 수평선은 무서울 정도로 캄캄했다. 가만히 저걸 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멍하니 함께 바다를 구경하다가, 나는 가끔씩 끝없는 바다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곳에서 하늘을 보면 두려움을 느낀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천체관측 동아리에 잠깐 몸담았던 적이 있었다. 많은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단 하나의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2019년이었다. 1호선 북부 끝자락까지 가서, 전기 대신 기름을 태워 움직이는 기차로 갈아타고 한참을 올라간 뒤 버스를 갈아타면 휴전선 턱 밑, 백마고지까지 갈 수 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면 내 시야에 다른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고 그냥 하늘과 별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런 상황에 놓이면 별들이 쏟아져 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말 우주로 빨려드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물론 영어가 서툴러 이런 이야기를 모두 실감나게 옮기지는 못했지만, 팩트(?)는 전달이 된 듯했다. 자신도 그런걸 가끔 느끼는데, 무서운 동물들은 실체가 있는 무서움인 반면 어두움이나 추움같은 것들은 실체가 없는 두려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참 신기하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어두움이나 추움과 같은 것들도 진화가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결국 똑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자기도 그것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주의 광활함, 끝없는 바다에서 오는 두려움은 진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프랑스 철학자 카뮈가 부조리라고 표현하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바다나 우주를 보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바다나 우주나 그 어떤 것들도 그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인간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바다나 우주는 물론 우리도 그냥 존재할 뿐이다. 카뮈는 이러한 것을 부조리함이라고 표현했다. 이 개념을 이리저리 표현하기 위해서 깨나 고생을 해야 했다.
카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친구가 그런 철학적 생각을 잘 담은 중국 소설이 있다고 나에게 보여 주었다. 외계인과의 만남을 다루는 공상과학 소설이었다. 그냥 외계인과 전투를 벌이는 전형적인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정말로 외계인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면 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영화 <컨택트>에서는 여러 선입견을 제거했다. 외계인은 우리와 같이 두 발로 걷고, 무섭게 생겼고, 징그러운 소리를 내고, 호전적이고,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수단으로 소통한다는 선입견들 말이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 소설도 <컨택트>와 비슷한 관점을 견지하는 소설이었다.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상상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인간과 외계 생명체 모두가 ‘그냥 존재하는 것’ 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카뮈의 부조리함과 연관지어볼 수 있다.
와인을 시원하게 하겠다고 가져가서는 한참을 돌아오지 않는 바람에 친구들이 술을 먹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로제와인은 시원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독일 친구는 바닷물로 와인을 시원하게 만드는 지금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조금 더 두자고 한다.
-프랑스 남부 니스의 해안가에서

첫 헤어짐

오늘은 룸메이트 친구가 떠나가는 날이었다. 네 명이 살 수 있는 이 플릿에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나머지 세 개의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렇게 휑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이틀이라는 시간을 홀로 보낸 후, 이 친구가 들어왔었다. 유심이 없다는 이 친구와 함께 파리 시내에 나가서 같이 유심을 사는 것을 도와 주고 프랑스 음식점에서 같이 밥도 먹고 왔던 이 친구. 하지만 만 19살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긴 했지만 다른 문화와 음식에 적응하는 것뿐 아니라 아직 사회에서 활발하게 주체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던 친구였다. 기본적으로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많이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종종 냉장고 문을 꼭 닫지 않아서 냉장고 전체가 서리로 뒤덮이질 않나, 집에서 하는 베트남 특유의 향신료 요리가 기숙사를 뒤덮게 만들지를 않나, 뽀득뽀득 소리가 날때까지 후라이팬을 닦지를 않지를 않나, 뭔가를 얻어 먹었을 때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한번만 이야기해주면 될텐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를 않지를 않나.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것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아무튼, 쉽게 말하면 가장 프랑스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친구였다. 호치민시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하는 이 친구는 EPITA 1학년 교환을 떠나왔다. 나는 2학년 교환학생이었기 때문에 이 친구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 눈에 비추어진 이 친구는 프랑스는 물론 외국 생활 자체가 언제나 탐탁치 않은 것 같아 보였다. 하필이면 1학년 교환학생 7명 중 5명이 한국인, 심지어 7명 중 5명이 여성이었던 탓에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거니와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었던 이 친구 입장에서는 한국인 친구들이 몰려 다닌다고 느끼곤 했을 것이다. 종종 새벽까지 롤을 하다가 주방에 나와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곤 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참, 프랑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느낀 이 친구가 항상 하는 요리는 베트남 간편식 쌀국수였다.
그래도 지난 주 학교에서 만난 프랑스 풀타임(교환학생이 아닌 학생들을 풀타임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친구와 1주일간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벌겋게 피부 껍질이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화상을 입었길래 깜짝 놀라서 여드름 화농에 바르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후시딘까지 빌려 주게 되었던 친구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이 친구가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 긴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새삼 기뻤다.
독일 친구는 물론, 베트남 친구도 ‘그냥 귀찮은데 가까운데 가자’ 라는 반응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미지근한데! 오늘 중요한 날이잖아!
그런데 이런 친구가 떠나가는데, 그래도 뭔가를 챙겨주고 싶었고,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은 것이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거나 어디를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일찍 떠나가는 이 친구의 일정도 한 몫을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냥 동정심일까. 글쎄 그런데 이 친구가 나보다 먼저 떠나가는 것이다.
친구가 만들어 주었던 베트남 전통음식
너 뭐먹고싶냐고. 같이 조금 맛있는거 먹으러가자고. 아무래도 프랑스인데 프렌치 먹어야 하는거 아니냐. 그런데 너가 이 근처에만 있다고 싶어하지 않았냐, 망할! 하필 동네 유일한 ‘프렌치’ 식당이 문을 닫기까지는 40분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학교가 위치한 파리 13구에는 프렌치 식당이 없다. 죄다 아시아 음식이다. 내일 비행기도 부랴부랴 타러 갈텐데 이 순간까지 서두르도록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근처에 내가 평소 맛있고 저렴하다고 생각했던 아시안 음식점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음식점에 도착하여 베트남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는 이 친구에게, ‘야 너 하루 있으면 베트남음식 실컷 먹을 수 있는데 무슨 베트남 음식이냐고, 다른 거 먹으라고’. 시켰던 톰냥꿍 계열의 수프 하나와 떡밥, 된밥. 그리고 중국 음식풍의 닭고기. 아시안 음식은 맛있었다. 나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나는 한국으로 치면 된밥에 속하는 밥이 조금 더 좋았고, 이 친구는 ‘떡’ 과 같은 식감을 주는 밥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빨래를 모두 건조시킨 독일 친구가 이제 합류하기로 했다. 우리는 근처 바로 향했다. 사실 나는 이 바를 가는 것이 불만이었다. 아니 한쿡인 정서상 마지막날이면 사실 센 강에서 에펠탑 보면서 맥주병이나 와인병 하나 들고 거닐며 드러누워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적어도 이렇게 날씨 좋은 날에는 공원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은 왜 이렇게 뜻뜻미지근한가. 되려 내일 떠나는 당사자도 아닌 내 입이 삐쭉거렸다. 게다가 이 베트남 친구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바’ 라는 공간은 그냥 조금이라도 이 친구와 조금 더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한 공간적 매개체일 뿐이었다. 바에서는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갔다. 베트남 친구가 다음날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일찍 자리를 비웠다.
독일 친구와 벨기에에 살다가 한국으로 떠난 친구 이야기를 했다. 이 친구는 호텔에서 일을 하느라고 1년 넘게 벨기에에서 살았는데, 6개월마다 룸메이트가 바뀌다 보니 처음에는 엄청 슬퍼했지만 두 번째는 조금 무뎌지기도 했다고. 그 전체 과정이 뭔가 슬픈 것 같다고. 자극이 무뎌지고 그러지는 않았냐 물으니, 어제 생일을 맞아 21살이 된 이 독일 친구가 말하길,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자기는 이미 3년동안 하나의 기숙사에 살다 보니까 그렇게 룸메이트가 바뀌는 경험을 많이 했다고. 자신의 첫 룸메이트는 베트남 친구였는데 굉장히 소극적이었고 딱 한 번 서로 요리를 해주는 매주 금요일 밤 주방 파티에 참석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 한편, 두 번째 룸메이트였던 적극적이고 활달한 이탈리아 친구는 여자친구가 중국인인 탓에 항상 기름진 중국 요리를 많이 했는데 거대한 중국식 팬을 항상 제대로 씻지 않고 싱크대 한쪽에 쳐박아 두어서 짜증났지만, 떠나는 날 함께 온종일 술을 같이 마시며 이야기를 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베트남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기숙사 들어가는 키를 깜빡하고 자기 방 안에 놓고 와서 기숙사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우리 옆에 뻘쭘하게 서 있었다. 나는 아직 맥주가 반잔 정도 남아 있던 터였다. 와 잘됐다! 다시 봐서 기쁘다! 그냥 앉아! 나랑 독일 친구 들어갈때 같이 들어가자.
각 나라 대학교의 학식 이야기를 해서 떳떳하게 세종대학교 학식 메뉴의 다양성도 보여줬다. 독일 친구도 자신의 학식 메뉴를 보여줬는데, 인상깊었던 점은 ECO점수가 가격 옆에 표시되고, 각 메뉴마다 영양성분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베트남 친구의 경우 따끈따끈하게 만들어진 음식에 익숙하기보다는 편의점에 항상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고 그것들을 먹는것이 학식 느낌이라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도 나왔다. 독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주거 단지에서 일어나는데, 리모델링을 핑계로 사람들을 내쫓은 다음 세를 부쩍 높여서 다음 사람들을 받는 구조로 일어난다고 한다. 나는 한국의 경우에는 주거지역보다는 상업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미디어에 굉장히 민감한데, 서울이 엄청 크다보니 특정 지역이 인기가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그 지역에 로컬 상점들이 모두 쫓겨나고 스타벅스같은 프렌차이즈가 입점해버리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 버렸다. 맥주는 어느새 거덜났다.
모두 같은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같은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서로 가벼운 포옹을 건넸다. 조심히 돌아가라고, 혹시라도 내일 아침에 도움이 필요하면 공항까지는 같이 가주지는 못하겠지만 지하철까지는 가줄 수 있으니까 연락하라고 했다.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것 같다.

자화자찬

오늘의 미뉴 마감. 우리가 만든 성공의 희생양!
프랑스는 많은 식당에서 ‘오늘의 메뉴’를 제공한다. 대부분 저렇게 생긴 블랙보드에 흰 글씨로 매일매일 새로 고쳐 적는다.
사진이 촬영된 장소는 니스의 한 식당이다. 그런데 보통 오늘의 메뉴가 다 팔렸으면 다 팔린거지 ‘오늘의 메뉴 마감!!! 우리가 만든 성공의 희생양’ 같은 자화자찬 멘트를 직접 흰 분필로 적어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 남부 니스의 해안가 식당에서

교환학생 선물

오설록을 챙기다가 참기름에 후리가케를 뿌려 먹는 것을 소개해 주고 싶어서 반쯤 남은 참기름과 후리가케 두 개를 같이 챙겼다. 잘 설명해 주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갔던 것은 오설록 프리미엄 티 4박스와 붉은 잉어가 잔 바닥에서 넘실거리는, 동양스럽고 예쁜 도자기 소주잔 3개, 안동소주 패키지를 구매했을 때 딸려 온 전통소주잔 1개였다. 오설록 차도 너무 좋은 선물이고, 도자기 소주잔보다 비싸기까지 하지만 한번 먹고 나면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설록 차를 선물한 경우 노션에 그 차에 대한 설명을 적어 문자로 보내 주었다.
아참, 전반적으로 친구들이 선물을 준비해 오지는 않는다. 나만 못 받은걸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좋아했다.
프랑스 친구의 온라인 반응
터키 친구의 온라인 반응
안동소주잔은 사실 내가 쓰려고 가져간 것이고 혹시나 기념품이 모자를까 해서 챙겨간건데, 브라질 친구들에게 소주를 소개해 준답시고 소주 파티를 할 때 어차피 너네 줄 선물이었다고 하면서 잉어 소주잔을 꺼내 쓰다가 하나를 깨먹어 버리는 바람에 선물로 줄 수밖에 없었다.
안동소주잔
그래도 안동소주잔을 받은 인도 친구가 ‘이거는 잘 전시해 둘 것’ 이라면서, 소주 먹을때마다 꺼내 쓸거라고 하며 기분좋게 가져갔다. 여하튼 여간 선물이 모자랐던 것이 아니라서, 내가 쓰던 젓가락도 깨끗하게 닦아서 내가 직접 끓인 짜파게티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 주었던 친구에게 챙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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