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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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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0 10:29
last edited
2023/08/1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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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쉬움
이과: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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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작성해 둔 글이다. 영어를 그렇게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환학생에 가서 외국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말이 잘 통하는지, 상대방이 흥미로운 친구인지 아닌지에 따라 대화 주제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잘 맞는 친구는 몇몇 있었고 그 친구들과의 대화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메모는 많이 남겨 두었지만 대화를 줄줄 써내려갈 만큼 명확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친구는 몇 없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교환학생이 끝나갈 무렵 더욱 가까워진, 내가 생각하기에 어느정도 정서가 잘 맞았던 한 브라질 친구와의 대화는 글이 살아 있는 편이었기에 추억을 톺아볼 겸 글을 남기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참고하며 설렘을 장전하기도 하고, 나도 예전에 외국에서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구나 돌아볼수도 있을 것 같다.
맑은 날 파리 13구에 위치한 몽수히 공원 (Parc Montsouris)
공원에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오리들과 그 뒤로 보이는 사람들
거위 가족도 보인다. 거위 가족은 파리지앵들의 눈길도 사로잡는다.
공원의 분위기
공원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맑은 날 파리 13구에 위치한 몽수히 공원 (Parc Montsouris)에 갔던 순간부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친구는 몇 시간 전부터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부랴부랴 공원에 도착했을 때 친구는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를 읽고 있었다.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책의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책을 쓴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너무 재미있다고 신나 있는 상태였다.
책을 읽다가 뒤늦게 도착한 나를 발견한 친구가 인사를 하고 있다
사실 자신은 이미 이 책을 포르투갈어(브라질에서 사용됨)로 버전으로 한번 읽어 보았는데, 저자는 분명히 이 책을 영어로 썼을 것이기 때문에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원문으로 느끼고 싶어서 영어로 읽고 있던 참이라고 했다. 노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인 줄만 알았는데 책을 좋아하고 저자의 느낌까지 가져가려고 한다니, 약간은 의외였다. 나는 영어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서양 미술사>를 영어로 읽어볼 셈이라고 했다. 친구는 내가 언급한 책에도 흥미를 가졌다. 한국어로 설명해도 어려운 책의 주제를 영어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어찌어찌 의미는 통한 모양이다. 나는 한번 더 물었다. “영어로 책을 읽으면 영어 실력이 많이 느는 것 같아?”.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읽기는 외국어 실력을 늘리기에 정말 좋은 방법이야. 사실 독일어를 배우려고 할 때 그냥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의 책을 아무거나 잡고 냅다 읽어 보려고 끙끙댔던 적이 있어. … 그런데 그것보다는 충분히 쉬운 책이나 한번쯤 너의 모국어로 읽어 보았던 책을 영어로 읽는 것을 추천해”
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며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맥주를 하나 집으러 이동했다. 가는 길에 스타시옹 F에 방문했던 이야기(프랑스 스타트업의 성지 스타시옹 F에서 MBA 사람들과 샴페인을 마시기까지)를 해 줬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본인도 창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그런 경험을 한 것이 너무 부럽다고 대답하면서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친구도 벤처에 관심이 많구나! 친구의 일대기가 궁금해졌다.
이 브라질 친구가 프랑스에서 교환학생 중인 학교는 EPITECH이다. EPITECH는 프랑스에서도 실험적인 커리큘럼과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학교로, 별도의 교수자 없이 과제물과 선후배 간 멘토멘티 관계로 운영되는 IT 학교다. 본국에서의 전공도 컴퓨터공학이고, 자신이 지금 EPITECH에 다니고 있으며 개발하는 일도 정말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15시간씩 개발에 몰두할 정도로 훌륭한 개발자는 아니고 약간의 완벽주의 기질도 있어 개발 결과물을 린하게 생산하지 못한다고 본인을 평가했다.
그리고는 이 친구와 함께 교환학생을 떠나온 또다른 브라질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과거 스타트업에서 함께 일할 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NGO기준 브라질 근무환경 TOP10에 속한다는 이 스타트업이 하는 일은 업무자동화 도구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이었다. 한 번은 클라이언트가 자사 소프트웨어를 홍보할 랜딩 페이지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이것을 만들어주는 경우 계약금을 두 배로 주겠다고 클라이언트에서 요청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업무 자동화 도구를 만드는 회사는 그 일만 해도 바쁘기 때문에 랜딩 페이지같은 것까지 만들어 주는 친절을 베푸는 일은 흔하지 않다. 보통의 사원 같았다면, 그냥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라며 쳐낼수도 있는 일이었다. 당시 안정적인 웹 랜딩 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리소스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이 친구의 훌륭한 영업 사원적 기질이 발현됐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과 완벽주의 때문에 개발에 몰두해 짧은 시간 안에 약간 부실한 랜딩 페이지를 만들어 고객에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회사 동료이자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는 완전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대한 응답을 유보한 뒤 친구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이러저러한 정도 퀄리티의 랜딩페이지를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 얼마나 걸릴까?’ 3일이면 될 것 같다고 하는 친구의 응답에 이 친구는 바로 계약을 성사시키고 계약금을 두 배로 따내는 일에 성공했다고 한다. 뭐 이런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협상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오히려 방금 말했던 개발 담당 친구와 잘 협업하는 영업인이나 사업가에 더 알맞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동네 길거리의 조그만 마트에서 한 병씩 들춰업고, 모자랄까 둘 모두를 위해 한 병을 추가해 들고 나온 맥주 세 병은 정말 시원했다. 공원 잔디에 앉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구는 자신의 일을 했던 회사의 근무 환경이 상당히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근무환경 하면 나도 꽤나 재미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디어의 근무환경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회사 건물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바베큐도 하고, 플레이스테이션도 하고, 칵테일도 말아 먹는 동영상을 보여주며 출퇴근 시간도 완전 자율이라고 했다. 꽤나 놀란 눈치였다. 친구는 리액션이 좋아서 말할 때 기분이 좋다.
나의 귀국 전날. 어김없이 친구가 기분좋은 이야기를 해 준다.
이렇게 리액션이 좋은 브라질 친구와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친구의 개발자 메이트 친구는 나와 같은 기숙사 플릿을 사용하고 있다. 그 친구를 보러 우리 방에 들렀던 것이다. 별 것 아닌 이야기도 생글생글 웃으며 잘 들어 주고, 영어에 익숙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먼저 말을 걸어 주며, ‘너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한국 사람이야! 비단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최고야!’ 라고 추켜세워주며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에도 그렇게 꺼렁꺼렁 외치는 이 친구를 싫어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번은 새벽 늦게 센 강 보트 투어와 보트 파티를 마치고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투어는 물론 파티 내내 영어에 미숙해서 주눅들어있던 내게 영어 충분히 잘 한다고, 너가 영어를 못 해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들어 줄거니까 그냥 부끄러워 말고 내던지라고 격려를 해 준 친구이기도 했다.
사내문화를 이야기하던 중엔 5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만큼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 친구가, 한국 사람들이 공손하다, 존댓말을 하는 것도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회사의 ‘공손’ 문화에 대해서 한국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친구는 브라질의 공손함 문화가 한국보다(내 기준상 상상 이상으로) 덜 규범적이라며 자신이 회사에 들어갔을 때의 예를 들어 주기 시작했다.
상사와 처음 만났을 땐 서로 어느정도 포멀하다. 하지만 정말 빠른 속도로 편해진다. 편해진다는 것이 뭘까. 이런 대화가 일상이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와 8살 차이가 나는 친구의 매니저가 함께 밤 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야근을 하는 상황에서
상사: “이 늦은 시간까지 뭐하는거야?” 친구: “시발; 뭐긴 뭐야 너가 일을 못하기때문에 나도 집 못가고 일하고 있는거지 시키야”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고 한다. 본인은 조금 더 말을 강하고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라고. 한편 다른 브라질 교환학생 이야기를 하며 본인보다 심한 친구도 있다고 하며, 이렇게 과할 정도로 직설적인 대화가 브라질에서는 꽤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편이라고 한다.
‘시떼 유니버시떼’는 전세계 다양한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기숙사 건물을 지어 프랑스에 유학 온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기숙사 단지다. 하루는 이 친구와 이 기숙사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었다. 여담으로 한국 건물이 가장 신식이라 가장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는 한국관 건물 안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했다. 같은 학교 한국 교환학생 친구 중 한명이 이 한국관에 살았기 때문에 다음에 그 친구 통해 건물도 들어가고 소주 파티도 한번 하자고 이야기했다.
브라질 친구들을 모두 모아 놓고 소주 파티를 결국 하긴 했다.
이런 날에도 정서와 문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날은 반려견과 반려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가 죽은 슬픈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감자의 사촌뻘쯤 되는 채소들로 만든 브라질의 핑거푸드들에 대해 소개해 주기도 했다. 깔끔하고 모던한 식당이 좋은지, 딱 봐도 실력이 좋아서 오래 살아남은 듯한 노포가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노포를 선호한다는 나에게 한국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그런 식당들이 전반적으로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찐 맛있는 브라질 전통 음식’ 들을 파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본인도 그런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버지랑 밥을 먹는다면 그런 식당에 가겠지만,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할 때 그런 식당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아예 구불구불한 골목 샛길을 의미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도 주워듣는다. 그런데 길이 왜 쭉쭉 뻗지 않고 구불구불해질까? 유현준 교수님이 강북의 땅이 굽은 이유로 과거 만들었던 사람과 동물을 위한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경사를 오르내리는 대신 같은 고도로 빙 둘러 길을 만드는 경우가 많이 생겼고, 이것이 길이 굽어지는 이유라고 하셨다. 이렇게 길이 굽어지는 것은 보통 자연지형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브라질은 산이 정말 많은 도시임에도 유럽인들이 식민지배하면서 격자모양으로 길을 파 버리는 바람에 차가 못 올라갈 정도로 가파른 길들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해피 아워에는 맥주가 조금 더 싸다. 야외 테라스에서 먹는 맥주.
6월 7일쯤이었나, 모네 박물관에 함께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어느 날에는 여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여자친구가 연상이니 연하니, 누나가 좋니 동생이 좋니 이런 이야기도 하고, 최근에는 무엇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고민들을 가볍게 말하니 과거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파티에 갔는데 갑자기 개복치처럼 컨디션 안좋아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정말 별것도 아닌걸로 싸우고 했던 친구의 과거 썰도 풀어 준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자친구와 서로의 삶에 터치하는 것에 대해 국가별 인식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로 번져 나갔다. 종내에는 법과 규율을 주제로 약간은 철학적인 이야기로 번졌다. 한국 사람들이 어느 사건에든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보고자 했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어느새 돌아오는 길에 있는 레스토랑 겸 펍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나는 한국 사회와 문화에 몸담으며,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거나 지극히 제한된 자유 가치에 초연한 사람이 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생각을 더 잘이해하고 싶으면 글 절대적인 가치란 것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유럽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느낀 점들을 참고하면 좋다). 이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 했던 이야기가 크게 인상깊었기 때문에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헤이 장후, 너가 말하는 것 무엇인지도 알고, 나도 상당부분 동의해. 하지만 토론자의 입장에서 한번 반대 이야기를 해 볼게. 공격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러더니,
“한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은 은 내가 볼 때 꽤 많은 사회적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같아. 물론 약간의 선입견도 있겠지만. 한편, 내가 생각하기에 브라질 사람들은 정말 따뜻하고 좋다는 공통점이 있어.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 무단횡단? 음주운전? 단속을 하지 않는 곳에서는 공공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곤 해.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 규칙에 의해서 유도리 없이 정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완전히 반대로 규칙을 어기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스트레스받아가면서 살아가는 사회. 나는 브라질의 유도리 있는 문화도 정말 좋지만, 둘 중 한 군데에서만 살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누군가 나에게 어떠한 문화 아래에서 살 것인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그래도 규칙에 의해서 꽉 막혀 살아가는 사회를 선택하겠다고 할 것 같아.”
글을 쓰는 데 참고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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