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때 믿었던 지식의 구조 - 너무 깔끔하고 좋은걸?
어느 순간부턴가 고등학교 미적분의 학습 내용은 정말 촘촘하게 짜여진 상향식(bottom up)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극한값 정리 → 미분 계수의 정의 → 롤의 정리 → 평균값 정리로 이어지는 연역적인 흐름이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누군가 수학은 연역의 학문이라고 말했는데, 와…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학습의 전개인가! 이때 반짝 ‘수학의 자신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많이 올랐던 것 같다. 모든 것을 밑바닥부터 설명하겠다는 마인드로 공부할 때면 많은 것을 배운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ref1).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 수학을 공부할 때는 물론 머신러닝을 공부할 때조차도 - 한동안은 그렇게 상향식 사고를 통한 학습법을 그대로 적용하며 학습 내용을 하나의 페이지에 선형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시간을 잡아먹으며 나의 학습 과정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억지 논리를 만들어냈다. 개념들이 화살표처럼 ‘연결 리스트’처럼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물망 혹은 순환 그래프처럼 얽혀 있어서 하나의 페이지에 관련 개념을 모두 적어넣는 것이 어려움을 깨달았다. 딥러닝을 그렇게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하나의 개념을 습득하기 위해 딸려 오는 수많은 ‘밑바닥’이 발견됐다. 밑바닥 하나가 빠져 있음을 인지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멈추고 다시 돌아가 그 부분을 메꿔야 했다. 어떤 개념의 원리를 타고 들어가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어떤 개념에는 또 그 개념의 밑바닥이 있고, 그 밑바닥에는 또다시 밑바닥이 있었다. 이 밑바닥들끼리는 특정 과목이나 학문으로 그룹화할 수 없었다.
시스템의 완벽한 이해에 대한 욕망은 나뿐 아니라 세기의 천재들도 가지고 있는 욕망인 듯 같다(ref5:테슬라의 안드레).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미련한 짓일 수 있겠다. 파인만의 말(ref2)을 빌려 설명해 보자면, “내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사고의 첫 단추들은 충분히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되는 관습적으로 선택된 정리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미적분 시간에 내가 밑바닥으로 여겼던 극한값의 정리도 관습적으로 선택된 밑바닥일 뿐이다! 더 밑바닥인 무한대의 정의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학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리가 아님에도 “이해했다 치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래, 공리라고 할지라도 그 공리는 고등학교 미적분에서는 사실상 공리인 것이다.
이 사실들을 인정하고 나면 지식이 그물망 형태로 퍼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너무나도 신나는 일이 된다. 실제로 우리의 머리 속에 지식이 저장되는 방식도 어떤 밑바닥부터 저장되는 것이 아니었고, 학문이 발전한 방식도 무조건적으로 연역적이지만은 않았다. 단지 어떤 선개념(preconception) 에서 시작해서 다음 시도들이나 심화 조사에 대한 시도를 이어나가게 되며, 이것을 설명해나가는 과정에서 거미줄처럼 얽혀(ref4:지식그래프를 그리는 사람)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이 일어난다(ref3).
그냥 생각나는 단어들을 휘갈겨 써 봤다. 이런 지식에 밑바닥과 '더 근본적인 개념' 은 없다. 특히 문과 이과 구분이란 없다.
교육과정, 교과목, 바이블은 '좋은 선개념' 을 제시해줄 뿐이다(ref5:어떻게 배우는 것이 좋은가). 내가 고등학교 미적분을 연역적 과정이라고 느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교육과정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미적분 교육과정은 '음, 이정도까지면 고등학생이 더 low level 로 내려가지 않고도 이 정도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학문의 컨셉을 이해하고 사고를 전개할 수 있겠지? 미적분학은 딱 요기서부터 시작하면 참 좋아요~' 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교육과정은 리처드 파인만이 말하는 '관습적으로 선택된 정리들'부터 시작된 연역적 연결이었다.
parse me : 언젠가 이 글에 쓰이면 좋을 것 같은 재료을 보관해 두는 영역입니다.
1.
None
from : 과거의 어떤 원자적 생각이 이 생각을 만들었는지 연결하고 설명합니다.
1.
•
이 글의 내용은 빠르게 학습하기 위해 Bottom Up 학습과 Top Down 학습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 고민하던 중 정리하게 되었다.
supplementary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을 뒷받침하는지 연결합니다.
2.
opposite : 어떤 새로운 생각이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과 대조되는지 연결합니다.
1.
None
to : 이 문서에 작성된 생각이 어떤 생각으로 발전되거나 이어지는지를 작성하는 영역입니다.
5.
ref : 생각에 참고한 자료입니다.